서울 종로에서 만난 네덜란드 도시재생 이야기@ 보안여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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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은 매우 허름해서 당황스러웠다. 옛날 건물인줄은 알았지만 거의 쓰러져가는 느낌이었다.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옛날식 간판의 맞은편에는 샛-주황색의 네덜란드 전시에 대한 커다란 판넬이 붙어있었다. 평창올림픽 시즌부터 시작해서 네덜란드의 문화를 알리는 전시 시리즈(NEDxPO)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이 도시재생 전시는 그 중 하나였다. 실내로 들어서니 작은 응접실 방이 있었다. 오래된 한지 느낌의 벽지에 둘러쌓여 있는 주황색 의자, 주황색 테이블, 주황색 보드가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순간은 마치 옛날 사옥을 체험하는 듯 했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자 마주한 것은 주황색이 아닌 연한 고동색의 천들이 산들바람에 미미하게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거친 결의 보안여관 나무 기둥들과 하나되어 일렬로 늘어져 있는 천 소재의 포스터들에는 네덜란드 도시재생 사례 속 quote들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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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올라서니 오디오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대충 들으니 인터뷰 내용이었다. 오디오 소리를 따라가다가 더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가로 폭이 3미터는 되보이는 벽 전체에 역시나 밝은 주황색으로 네덜란드 지도와 함께 “Interactive Map”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문득 대학교 논문 쓰던 때가 생각났다. 아 그래 Interactive는 정의가 이렇게 넓고도 다양했지. 항상 interactive라고 디지털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내가 논문을 쓰면서 interactive에 착각하던 부분이 다시 떠올랐다. 교수님이 그래서 너가 원하는 interactive는 뭔데? 그냥 공간에 같이 있는 것도, 박수 치는 것도 interactive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내 최애 교수님 — 생각할수록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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쫙 늘어져 있는 나무 빨래 판대기들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구상과 디자인이 참 좋다. 이렇게 손으로 직접 딴딴한 도화지 종이 잡지를 꺼내서 읽고 다시 넣고. 재미가 쏠쏠했다. 나만 재밌는 건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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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되어 있던 가출판본인데… 갖고 싶다…
아래 이미지에 글들이 많은 관계로 나는 간략하게 요약/정리만 하려고 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례들 순으로.

  1. De Hallen

     


    – 트램 차고지 형태를 살린 공간 기획: 빛이 덜 드는 공간은 그에 맞게 스튜디오나 영화관으로 / 수평으로 긴 공간에는 호텔을 디자인했다.
    –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공주도로 개발되려다가 자금 문제로 민간 사업자들에게 팔았지만, 지역성을 배제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회사들에 주민들이 반대했다. 지역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었던 사례.
    – “지역주민과 창의적 이니셔티브들에 의한 도시재생”: 주민들과 건축가 Andre van Stigt와 함께 설립한 TROM (트램차고지개발회사)는 상업성과 공공성을 잘 조율하면서 커뮤니티에 기여한다.
  2. 169 Klushuizen Wallisblock

     


    – 1유로에 집을 팝니다: 낙후된 ‘핫스팟’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다 건축가 이너커, 프로세스 매니저 프란스 가 제안한 전략 활용. 1유로에 건물을 팔되 예비 입주자 스스로 건물의 개보수를 진행하는 책임을 지게 했다.
    – 한계를 기회로 바꾸는 상상력: 입주자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적합한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스판헨 지역을 자연스럽게 다양한 색깔을 가지게 된다.
    – 지속가능한 협업: 예비 입주자들은 스스로 ‘Corporative Private Client’ 지위를 획득하고 건물의 공동 소유권을 얻었다. 모든 진행사항을 결정하되 이너커와 프로세스 매니저 프란스의 조언과 도움을 받으면서 진행했다.
  3. OT 301 – 아티스트들의 도시재생

     


    – 행동하는 아티스트: Ivo Schmetz의 이야기. 무단점유를 통해 예술가들의 피난처를 조성하여 자주적인 예술가 조직 EHBK를 설립한다.
    – Subculture 없는 Culture는 없다: 1년동안 빈 건물을 무단 점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3개월 짜리 빈 건물의 무단점유자 (squatter)였지만 정부의 ‘subculture’에 대한 관용 아래 OT301에 머무른다.
  4. Fenix Food Factory

     


    –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일시적 활용: 여기를 어떻게 살리지? 라고 막막할 때, 일시적으로나마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보자.
    – 카탈리스트 양조업자 (Catalyst Brewer): 맥주 양조장을 꿈꾸던  Tsjomme Zijlstra가 디벨로퍼  Heijmas를 통해 창고를 추천받는다. 창고를 건강한 먹거리 장소로 탈바꿈시킬 사람들을 모아 시작한 것이 Fenix Food Factory.
    – 식문화가 이끄는 도시재생: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식문화를 활용하여 지역에 기여한다.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고용하고, 난민과 주민을 위한 식사 이벤트 등 커뮤니티 활성화에 힘쓴다고 한다.
  5. De Cuevel

     


    – 한계를 기회로 바꾸는 상상력: 오염지대이자 개발 악조건이었던 곳. 자연정화식물과 폐보트를 통해 부지를 활용한다.
    – 지속가능한 협업:  이사진은 봉사직이나 다름 없는 포지션이기에 더 퀴블 운영 재단의 명확한 방향이나 운영진 선출은 중요하다.

 

한참을 나무 인터렉티브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드디어 오디오가 궁금해졌다. 잠시 엿보니 어두운 방안의 티비에서 인터뷰 내용들이 텍스트와 오디오로만 재생되고 있었다. 음 이런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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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의 마지막 방은 책방으로 향하는 복도 바로 전이었다. 엽서 봉투와 스티커를 주고는 봉투에 팜플렛을 넣고 너가 원하는 스티커를 골라봐! 란다. 나쁜 컨셉은 아니었지만 스티커 하나로 별로 특별해지는 느낌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다가 뒤의 걸려있는 엽서지들을 보면서 아하! 싶었다. 엽서 만한 종이들에 네덜란드 도시재생 사례 장소들의 사진 및 간략 설명들이 담겨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엽서지들이 나무 판 위에 적당한 사이즈의 돌멩이들로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  보안여관의 옛날 느낌 속에서, 그리고 도시재생이라는 전시에서 나무와 돌을 활용해 장식한 것이 굉장히 조화롭게 다가왔다.

보안여관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허름한 곳을 전시공간으로 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 장소들은 하나같이 세련되려거나 힙하려고 안달이 났으니까. 새로운 카페들이 브루클린을 떠올리게 하는 팩토리 감성으로 인테리어를 거칠게 하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옛날 공무원들이 머무르던 보안여관을 아직 유지하고, 그 옆에 신관(책방, 전시, 레지던시 장소, 바, 카페 등)을 지어서 연결했다. 유리 없는 창문으로 한옥 지붕들도 문득문득 보였다. 이 보안여관이 지속가능성의 좋은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재생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현실은 여기밖에 공간이 없어요 엉엉 이었을지 몰라도…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마음이 편한 법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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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시재생에 대해서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 도시 살롱. 네이버가 요즘 밀고 있는 듯한 팟캐스트 플랫폼 audioclip 에서 하는 방송이다. 피디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게스트들이 괜찮아서 듣는 방송. 강 이북과 이남을 연결하는 런던 보행자 다리들과 한국 자동차 다리들의 차이점, 갈수록 비싸지기만 하고 컨텐츠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는 힙한 동네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네덜란드 도시재생 이야기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얘네들도 그렇게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 마냥 모든 것이 좋고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고 막상 내실은 어떤지 모른다. 호락호락한 과정은 결코 아니었겠지 싶다. 그래도 결과물로써 우리이렇게해냈다! 라고 외치는 듯한 퀴블, OT301 등의 구역들/건물들/사람들의 스토리가 참 볼만했다. 융통성 있는 정부 규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시민들도, 다함께 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민간 개발 사업체들도 본받을만 하다.


나의 첫 도시재생 관련, 도시 관련 책은 런던의 착한 가게 였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 책을 읽고 요약해 달라는 감독님 요청 덕에 시작되었던 관심 주제였다. 처음에는 그냥 그 가게들 중 맥주집이 괜찮아 보였고, 마침 몇 개월 후에 런던을 가서 그 맥주집을 찾아갔고, 하필이면 그 맥주 공장이 운영되는 곳이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기찻길 아래 공장/가게 지대였다.

그리고 그렇게 런던을 끊임없이 (돈 아끼려고) 걸어다니고, 뉴욕으로 와서도 뚜벅이로 전시부터 행사까지 찾아다니다 보니 서울에 와서 경기도에 사는 게 새삼 아쉽다. 서울에는 어떤 컨텐츠들이 있는지 더 알아보고 싶은데 말이다. 사실 서울을 다니다보면 뉴욕이랑 런던에 비해서 아쉬운 게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한 구역만 파서 흥하게는 잘해도 그 주변, 근처와의 융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컨텐츠의 종류도 한정적이고 유행적이고 일시적인 느낌. 정말 카페는 드럽게도 많다. 그 카페를 그냥 커피 파는 장소가 아니라 어떤 커뮤니티의 모임 장소로 꾸려나가고 확장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그게 가게 주인들과 동네 주민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도시들은 적극적인 커뮤니티 구성원들 덕분에 이만큼 온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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